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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부르봉 허니'는 무슨 뜻일까? 로스터리 카페에서 원두 고르는 법

고양 화정도서관 앞 알루마레 커피 로스터스의 9월 핸드드립 라인업에는 '콜롬비아 우일라 엘 미라도르 핑크 부르봉 허니'라는 원두가 있습니다. 이름 옆에는 체리, 라즈베리, 자두, 레드그레이프, 브라운 슈가, 크리미가 적혀 있고, 가게는 이 원두를 그달 라인업 가운데 가장 화사하고 달콤한 원두로 소개합니다. 처음 보면 주문을 망설이게 되는 이름이지만 순서를 알면 이 한 줄에서 맛의 방향을 꽤 많이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원두 이름과 컵노트를 읽는 법,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사이에서 고르는 법, 처음 원두를 살 때 바에서 무엇을 말하면 되는지를 이따갈게 지도에 오른 로스터리들의 실제 안내로 정리합니다.

알루마레 커피 로스터스의 바에 금속 드리퍼와 도자기 드리퍼, 유리 서버와 검은 주전자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원두 이름은 나라, 지역, 농장, 품종, 가공 순서로 읽습니다

알루마레의 원두 이름을 나눠 보면 콜롬비아가 나라, 우일라가 지역, 엘 미라도르가 농장, 핑크 부르봉이 품종¹, 허니가 가공 방식입니다. 가게마다 일부를 빼거나 순서를 바꾸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 다섯 가지 안에서 이름을 짓습니다. 일산 성석동의 숏컷로스터스는 아예 칸을 나눠 '워시드 · 게이샤 · 몬하스 할라파 · 엘 피날 농장 · 1,450~1,500m'처럼 가공, 품종, 지역, 농장, 재배 고도를 차례로 적어 둡니다. 원주 바우로스터리카페는 핸드드립 원두마다 지역·고도·품종·가공·컵노트를 적은 설명 카드를 커피와 함께 줍니다.

¹ 품종(variety) 같은 아라비카 커피 안에서도 나무의 계통에 따라 나뉘는 갈래입니다. 게이샤, 부르봉, 카투라처럼 이름이 붙은 것이 많고, 에티오피아 원두에 붙는 74110·74112 같은 숫자는 에티오피아 짐마 농업연구소가 토종 커피나무 가운데 골라 낸 계통에 매긴 번호입니다.

고도가 적혀 있으면 맛을 짐작할 단서가 하나 더 생깁니다. 높은 곳은 기온이 낮아 커피 열매가 천천히 익고, 그동안 당과 향 성분이 더 쌓여 산미와 향이 또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도 숫자만으로 맛이 정해지지는 않으니 같은 나라 원두끼리 비교할 때 더 높은 곳에서 자란 쪽이 화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로 읽으면 충분합니다.

대전 진잠의 3커피스엔로스터리는 원두 봉투에 볶은 날짜와 원두 이름을 손글씨로 적어 줍니다. 봉투 한 장에 날짜, 나라, 농장, 품종, 가공이 차례로 들어가니 집에 가져가서도 무엇을 샀는지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3커피스엔로스터리의 흰 원두 봉투 두 개에 볶은 날짜와 나라, 농장, 품종, 가공 방식이 손글씨로 적혀 있고, 옆에 가게 이름이 찍힌 종이컵이 놓여 있습니다.

가공 방식이 맛의 방향을 크게 바꿉니다

커피 원두는 커피 열매 속 씨앗이라서, 수확한 뒤 과육을 언제 떼어 내고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구좌의 하토우 커피 로스터스는 메뉴판을 스페셜·내추럴·워시드 세 갈래로 나눠 두고, 워시드²는 과육과 점액질을 벗겨 물로 씻은 뒤 말려 깨끗한 향미가 나고 내추럴³은 열매째 말려 과일 풍미와 단맛이 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² 워시드(washed) 열매 껍질과 과육을 벗긴 뒤 씨앗에 붙은 끈적한 점액질을 물속 발효로 녹이고 씻어 내 말리는 방식입니다. 산지와 품종의 맛이 깨끗하고 밝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³ 내추럴(natural) 열매를 따서 껍질과 과육째 몇 주 동안 말린 뒤 씨앗을 꺼내는 가장 오래된 방식입니다. 과일 맛이 진하고 묵직하며, 와인 같은 향이 나기도 합니다.

허니⁴는 그 중간에 있습니다. 껍질과 과육은 벗기되 점액질을 남긴 채 말리는데, 남긴 양이 많을수록 화이트, 옐로, 레드, 블랙 허니로 이름이 바뀌고 맛도 내추럴 쪽으로 다가갑니다. 같은 허니라도 남긴 점액질과 품종에 따라 결이 꽤 다릅니다. 알루마레의 '핑크 부르봉 허니'가 체리와 라즈베리를 적은 데 비해, 점액질을 대부분 걷어 내는 화이트 허니로 가공한 '코스타리카 아테네오 블렌드'는 피칸, 구운 너트, 루이보스를 적고 고소하고 산미가 적어 매일 마시기 좋은 원두로 소개됩니다.

⁴ 허니(honey) 껍질과 과육만 벗기고 씨앗을 감싼 점액질은 남긴 채 말리는 방식입니다. 꿀을 넣는 것이 아니라 말리는 동안 끈적한 점액질이 꿀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름에 '무산소'나 '애너로빅'이 붙어 있으면 향이 강한 원두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산소 발효⁵를 거친 원두는 와인이나 잘 익은 과일 같은 향이 짙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원주 암스퀘어커피로스터스가 10월 한정으로 내놓은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하마쇼 G1 애너로빅 내추럴'도 포도잼과 건포도의 진한 단맛에 와인 같은 향을 적었습니다. 숏컷로스터스의 '콜롬비아 로사리오 리치 코퍼먼티드'처럼 리치가 든 발효 스타터를 함께 넣어 발효했다고 밝히는 원두도 있으니, 독특한 향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면 카드의 가공 칸부터 보면 됩니다.

⁵ 무산소 발효(anaerobic fermentation) 커피 열매나 씨앗을 밀폐한 통에 넣어 산소를 막은 채 발효시키는 가공입니다. 발효 시간과 온도를 조절해 일반 워시드나 내추럴에서 보기 어려운 향을 끌어냅니다.

네 칸 그림입니다. 1 워시드는 붉은 커피 열매를 과육 제거기에 넣고 껍질 벗긴 씨앗을 물길에서 씻는 장면, 2 허니는 끈적한 호박색 점액질이 남은 씨앗을 그늘막 아래 건조대에서 고르게 펴는 장면, 3 내추럴은 껍질째인 붉은 열매를 햇볕 아래 긴 건조대에 말리는 장면, 4 무산소 발효는 붉은 열매를 밸브 달린 스테인리스 밀폐 탱크에 붓는 장면입니다.

컵노트는 원두에서 느껴지는 맛을 음식에 빗댄 말입니다

컵노트⁶에 체리나 복숭아가 적혀 있어도 과일을 넣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볶은 원두를 내렸을 때 혀와 코에 느껴지는 맛을 비슷한 음식 이름으로 적은 것이라 같은 원두라도 가게마다 단어가 조금씩 다릅니다. 향을 따로 입힌 원두는 춘천 마이크로로스터즈가 '허니베리스'를 가향 원두라고 밝혀 둔 것처럼 따로 적어 두는 곳도 있습니다.

⁶ 컵노트(cup notes) 커피를 맛본 사람이 느낀 향과 맛을 과일, 꽃, 견과, 초콜릿처럼 익숙한 음식에 빗대 적은 표현입니다. 향미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월드커피리서치와 함께 다듬은 커피 향미 휠이 널리 쓰입니다.

컵노트에 적힌 맛이 한 잔에서 모두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원두도 물 온도나 분쇄 굵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같은 맛을 두고 떠올리는 음식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컵노트는 맞혀야 할 정답표로 보기보다 이 원두가 어느 쪽 맛으로 가는지 알려 주는 방향 표시 정도로 읽으면 충분합니다. 적힌 라즈베리 맛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 마신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하나보다 어느 쪽 단어가 모여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꽃, 베리, 감귤, 복숭아 같은 단어가 많으면 산미가 밝은 쪽이고 견과, 초콜릿, 캐러멜, 흑설탕이 많으면 고소하고 산미가 적은 쪽입니다. 원주 리을리을커피로스터스의 블렌드 두 가지가 이 차이를 잘 보여 줍니다. 메인인 매니악 블렌드는 호두, 헤이즐넛, 흑설탕, 밀크초콜릿을 적었고 손님들이 '다크'라고 부를 만큼 고소한 쪽이며, 베리 머치 블렌드는 블루베리, 라벤더, 레몬 캔디를 적고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손님에게 권합니다.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은 어떻게 마실지로 고릅니다

싱글 오리진이 한 산지의 맛을 그대로 보여 주는 원두라면 블렌드는 여러 산지를 섞어 가게가 원하는 맛의 균형을 맞춘 원두입니다. 우유와 섞거나 매일 아메리카노로 마실 원두라면 블렌드가 편하고, 핸드드립으로 한 잔씩 산지의 차이를 느껴 보고 싶다면 싱글 오리진이 맞습니다. 숏컷로스터스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원두를 두 블렌드 가운데 고르게 하는데, 과테말라·콜롬비아·에티오피아를 섞은 '마다가스카르'는 마카다미아와 다크초콜릿 쪽이고 에티오피아·엘살바도르를 섞은 '피피아일랜드'는 플로럴과 레드베리 쪽입니다.

숏컷로스터스의 흰 원두 봉투에 MADAGASCAR라는 이름이 적혀 있고, 둘레에 흰 상자들과 파란 리본 모양 표지판이 둥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습니다.

3커피스엔로스터리는 원두를 세 단계로 나눠 고르기 쉽게 해 두었습니다. 1단계는 산미가 거의 없이 고소하고 달달한 기본 원두로 매장 아메리카노에 쓰고, 2단계는 에티오피아·케냐·과테말라·코스타리카 싱글이 돌아가며 들어오는 산미·과일 향 원두, 3단계는 게이샤 같은 하이엔드 원두입니다. 1·2단계는 200g 단위로, 3단계는 100g 단위로 팝니다. 볶은 정도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사 온 원두를 며칠 쉬었다 마셔야 하는지는 제주 로스터리 카페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처음 사는 원두는 작게 사고 맛부터 보세요

입에 맞을지 모르는 원두를 200g씩 사기 부담스럽다면 작은 단위로 파는 곳을 고르면 됩니다. 춘천 스넬커피로스터스는 100g·200g 봉투 말고도 두 잔 분량인 38g 패키지를 팔고, 대학로 이화로스터리는 원두를 100g 단위로 팝니다. 3커피스엔로스터리는 원두를 사기 전에 맛이 궁금하다고 말하면 매장에서 내려 맛보게 해 준다고 안내하고, 고양 볼로 커피 로스터리도 매장에서 먼저 맛보고 고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집에 그라인더가 없으면 쓰는 도구를 말하고 갈아 달라고 하면 됩니다. 리을리을커피로스터스는 매장에서 원하는 분쇄도로 갈아 주고, 강릉 코지로스팅하우스는 주문할 때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모카포트, 프렌치프레스, 더치 가운데 어떻게 내려 마시는지 알려 주면 거기에 맞춰 갈아 보냅니다.

바에서는 "산미 있는 쪽, 고소한 쪽"만 말해도 됩니다

원두 이름을 다 읽지 못해도 원두는 고를 수 있습니다. 이화로스터리는 프루티한 쪽인지 고소한 쪽인지 원하는 향미를 말하면 맞는 원두를 추천해 주고, 수원 광교의 파소파소 커피 로스터스도 고소, 산미, 플로럴 가운데 좋아하는 타입을 말하면 골라 줍니다. 춘천 오롯이커피로스터스는 고소하고 산미 약한 쪽을 찾는 손님에게 코스타리카·과테말라·콜롬비아를, 화사한 과일 향을 찾는 손님에게 에티오피아 내추럴을 권합니다.

라떼로 마실지 블랙으로 마실지, 집에서 어떤 도구로 내릴지까지 말하면 추천이 더 정확해집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면 향으로 골라도 됩니다. 스넬커피로스터스처럼 시향 병을 두는 가게에서는 병 몇 개의 향을 맡아 보고 마음에 드는 쪽을 가리키면 됩니다.

어떤 원두를 몇 g 단위로 파는지, 갈아 주는지, 사기 전에 맛볼 수 있는지는 이따갈게 가게 페이지에서 사장님 페르소나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가게가 적어 둔 원두 안내를 바탕으로 답합니다. 라인업은 자주 바뀌니 이번 주에 새로 들어온 원두는 가게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3커피스엔로스터리나 오롯이커피로스터스부터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원두를 정성껏 볶는 동네 로스터리를 알고 계시다면 가게 추천으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