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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하고 너무 세지 않게요"면 됩니다: 칵테일 바에서 처음 주문하는 법

연남동 트라이싸이클의 메뉴판을 펼치면 「헤어질 결심」, 「길거리 토스트」, 「MSG」 같은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름만 봐서는 어떤 술이 들어갔는지, 단지 쓴지 짐작하기 어려워서 처음 온 손님은 메뉴판을 몇 번이고 넘기게 됩니다. 칵테일 이름을 몰라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술과 원하는 맛, 그리고 세기만 말하면 바텐더가 잔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이따갈게 지도에 오른 서울 칵테일 바 여섯 곳이 가게 페이지에 적어 둔 안내로 첫 주문 때 건넬 말과 메뉴판 읽는 법, 가격과 차지 확인까지 차례로 정리합니다.

바텐더에게는 좋아하는 술, 맛의 방향, 세기를 말합니다

바텐더들은 칵테일 이름을 몰라도 원하는 맛을 말하면 충분하다고 조언합니다. 상쾌한 맛, 시트러스가 도드라지는 맛, 술맛이 진한 맛, 과일 맛, 스모키한 맛, 쓴맛, 단맛 가운데 어느 쪽이 좋은지 알려 주면 바텐더가 그에 맞는 잔을 찾아 줍니다. 우리말로는 "진을 좋아하고, 상큼한 쪽으로, 너무 세지 않게요" 정도면 됩니다. 첫마디인 좋아하는 술은 칵테일의 베이스¹가 되고, 아직 정해 둔 술이 없다면 맛과 세기만 말해도 괜찮습니다.

¹ 베이스(base spirit) 칵테일의 바탕이 되는 술입니다. 진, 보드카, 럼, 테킬라, 위스키, 브랜디가 대표적입니다.

한남동 소코는 바텐더가 상큼한 쪽인지 묵직한 쪽인지, 좋아하는 술과 도수를 하나씩 여쭤본 뒤 잔을 권해 드린다고 가게 페이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트라이싸이클도 시그니처가 실험적인 편이라 낯설 수 있다며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만 말하면 골라 드린다고 안내합니다. 두 곳 모두 묻는 내용이 비슷해서 답만 미리 생각해 가면 됩니다.

혼자 간다면 바 자리에 앉는 편이 대화하기 쉽습니다. 트라이싸이클은 혼자 오는 손님에게 바텐더와 이야기하기 좋은 바 자리를 권하고, 소코의 긴 바 테이블에서는 바텐더가 잔을 만드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 칸 그림입니다. 바 자리의 손님이 투명한 술병과 호박색 술병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고, 레몬과 각설탕 가운데 레몬 쪽을 고르고, 손을 내려 조금 가볍게 해 달라는 몸짓을 하고, 생강과 고추가 담긴 접시에 손을 저어 빼 달라고 말하자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장면이 차례로 그려져 있습니다.

흔들어 만든 잔은 가볍고, 저어 만든 잔은 진합니다

세기를 가늠할 기준이 하나 있으면 메뉴판이 덜 막막합니다. 바텐더들 사이에는 레몬이나 라임 같은 시트러스 주스, 달걀흰자, 크림이 들어가면 셰이커로 흔들고 술끼리만 섞는 잔은 저어 만든다는 오래된 규칙이 있습니다. 흔든 잔은 공기가 섞여 가볍고 산뜻해서 비교적 빨리 마시게 되고, 저은 잔은 술맛이 앞에 서는 스피릿 포워드² 잔이라 천천히 마십니다. 마가리타, 다이키리, 위스키 사워가 흔들어 만드는 대표 잔이고 마티니, 맨해튼, 네그로니가 저어 만드는 대표 잔입니다.

² 스피릿 포워드(spirit-forward) 주스나 탄산 없이 술과 리큐어, 베르무트로만 만들어 술맛이 진하게 나는 칵테일을 가리킵니다. 네그로니처럼 쓴맛이 강한 잔도 많아서 처음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메뉴판에 재료가 적혀 있다면 이 규칙으로 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규칙대로 읽으면 트라이싸이클의 「7월 15일 그림일기」는 코코넛 그린티 카샤샤에 수박, 생강, 레몬을 넣고 탄산을 주입한 잔이라 가벼운 쪽에 가깝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위스키에 허브와 스모키 아마로 블렌드, 오렌지 비터스를 더한 잔이라 진한 쪽에 가깝습니다.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면 레몬이나 라임, 탄산이 적힌 잔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메뉴판은 이름 아래 적힌 재료를 함께 읽습니다

트라이싸이클의 시그니처는 이름마다 한 줄 이야기와 재료가 붙어 있습니다. 「길거리 토스트」에는 "손에 묻은 케첩까지 맛있던 시절"이라는 문구 아래 스모크햄과 마가린으로 팻워싱³한 위스키, 달걀흰자, 레몬, 케첩, 설탕, 토스트 크럼블이 적혀 있습니다. 이름이 장면을 보여 주고 재료가 맛을 알려 주는 구성이라 둘을 같이 읽으면 됩니다. 메뉴판에 영문 레시피도 함께 적혀 있어 외국인 친구와 같이 고르기에도 좋습니다. 시즌마다 새 잔이 나오고 지난 시즌 잔은 재고가 떨어질 때까지만 내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잔은 가게에서 물어보면 됩니다.

³ 팻워싱(fat-washing) 버터나 기름을 술에 섞어 몇 시간 두었다가 차갑게 굳힌 뒤 기름만 걷어 내는 방법입니다. 기름의 향과 맛이 술에 남습니다.

빨간 칵테일 잔 위에 민트 잎과 동그란 색색의 젤리가 꽂혀 있고, 옆에 물잔과 색연필이 꽂힌 컵이 놓여 있습니다.

청담동 제스트는 아예 메뉴판을 취향 갈래로 나눴습니다. 탄산이 있는 가벼운 잔(Bubbly & Refreshing), 상큼한 잔(Fresh & Bright), 마티니와 김렛 계열(Stylish & Sophisticated), 묵직한 잔(Boozy & Structured), 디저트 같은 잔(Sweet & Delightful), 무알콜 잔(Zero-Proof) 여섯 칸이라 원하는 맛의 칸부터 펴면 됩니다. 칵테일 값이 모두 27,000원으로 같아서 가격 걱정 없이 맛으로만 고를 수 있습니다. 매거진과 방문 후기에서 첫 잔으로 가장 자주 권하는 잔은 Z&T인데, 제철 과일과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허브로 진을 담그고 직접 만든 토닉워터를 더하는 제스트식 진토닉입니다. 이번 가을에는 못난이 사과에 타임과 로즈마리를 더했습니다.

조명이 들어온 긴 선반에 술병 대신 작은 유리병과 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앞으로 짙은 색 바 카운터가 길게 이어집니다.

제스트의 바 뒤 선반에는 술병이 없습니다. 설계할 때부터 선반을 술병이 들어가지 못하는 높이로 만드셨다고 하는데, 쓰레기를 줄이는 바로 가겠다는 방향에서 물러설 곳을 두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클래식 칵테일 하나를 알아 두면 기준이 됩니다

마셔 본 칵테일이 하나 있으면 주문이 한결 쉬워집니다. 국제바텐더협회(IBA)는 1961년 바텐더들이 가장 많이 주문받는 칵테일 50가지로 첫 공식 목록⁴을 냈고, 이 목록은 지금 102가지로 늘었습니다. 마티니, 네그로니, 김렛, 다이키리 같은 이름은 대부분의 바에서 통해서 "네그로니를 좋아하는데 조금 덜 쓴 쪽으로요"처럼 비교하는 말로 쓰기 좋습니다.

⁴ IBA 공식 칵테일(IBA Official Cocktails) 국제바텐더협회가 각국 바에서 가장 많이 주문받는 레시피를 골라 정리한 목록입니다. 1960년 파리 총회에서 처음 제안됐고 세계 바텐더와 호텔 학교 학생들이 기본으로 삼습니다.

소코는 클래식이 중심인 바입니다. 메뉴판에 드라이 마티니, 화이트 레이디, 김렛, 네그로니 같은 클래식 열한 잔이 22,000원에서 26,000원 사이로 올라 있고, 가게 페이지의 첫 잔 고르기 안내에는 드라이 마티니와 진의 균형이 선명한 화이트 레이디가 먼저 나옵니다. 시그니처 가운데에서는 샌들우드 향을 담은 Sandalwood Highball과 강배전 원두로 만든 에스프레소 마티니 Gabetini가 자주 언급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신사동 빌라레코드 Bar의 메뉴판은 왼쪽에 클래식 칵테일을, 오른쪽에 같은 잔을 분자 칵테일⁵ 기법으로 다시 만든 잔을 나란히 두었습니다. 아는 클래식을 왼쪽에서 찾은 뒤 오른쪽 잔과 비교해 고르면 되고, 클래식과 분자, 커스텀 모두 한 잔에 25,000원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올해 6월 옛 자리를 떠나 강남대로158길 25 지하 1층으로 옮겼고 새 공간의 운영 상태는 인스타그램 @villa_records_bar 공지로 확인해 달라고 가게가 안내합니다.

⁵ 분자 칵테일(molecular mixology) 분자 요리에서 쓰는 도구와 기법으로 만드는 칵테일입니다. 액체를 거품이나 젤, 작은 구슬 모양으로 바꿔 맛과 모양을 새롭게 냅니다.

두 개의 은색 노즐에서 짙은 호박색 칵테일 위로 크림색 거품을 층층이 올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메뉴에 없는 잔을 부탁할 때는 피하고 싶은 것부터 말합니다

명동 숙희는 좋아하는 술이나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면 메뉴에 없는 잔도 만들어 주신다고 적어 두었고, 빌라레코드는 커스텀 칵테일을 메뉴에 따로 올려 두었습니다. 소코의 가게 페이지 메뉴에도 취향을 말하면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메뉴판에 없는 칵테일' 칸이 있습니다. 이렇게 잔을 바텐더에게 통째로 맡기는 주문을 영미권 바에서는 딜러스 초이스⁶라고 부릅니다.

⁶ 딜러스 초이스(dealer's choice) 무엇을 마실지 바텐더에게 맡기는 주문입니다. 바텐더스 초이스라고도 부릅니다.

맡기는 주문에는 나온 잔을 마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잔을 받은 뒤에야 테킬라를 싫어한다고 말하면 서로 곤란해집니다. 못 마시는 술이나 피하고 싶은 재료가 있으면 주문할 때 먼저 말하라는 것이 바텐더들의 조언입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재료도 첫마디에 넣어 두면 됩니다.

술이 약하다면 도수와 논알콜부터 말합니다

술을 잘 못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는 일행이 있어도 칵테일 바에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트라이싸이클은 시소 팔로마, 개구리 토마토, 레이디 휘슬다운, 오늘의 모히또 네 가지 논알콜 칵테일을 19,000원에 따로 갖춰 두었습니다. 제스트는 무알콜 칸에 Zero Spumoni, Kombu Maid, Chocolate Porter Tonic 세 잔을 두었는데 토닉과 콤부차 같은 재료도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한남동 알로이 한남의 저녁 8시 이후 바 타임 메뉴에도 직접 만든 무알콜 스피릿으로 내는 18,000원짜리 제로프루프⁷ 칵테일이 있습니다.

⁷ 제로프루프(zero-proof) 알코올 세기를 나타내는 프루프(proof)가 0이라는 뜻으로, 술을 넣지 않은 음료를 가리킵니다.

제스트는 주류 주문이 필수라서 일행 모두 무알콜만 마실 계획이라면 미리 확인해 달라고 안내합니다. 소코는 도수를 낮춰 주거나 무알콜 잔을 만들어 주셨다는 후기가 많아서 주문할 때 말해 두면 됩니다.

가격과 커버차지는 가게 페이지 메뉴에서 미리 봅니다

이 글에 나온 바들의 칵테일 한 잔 값은 19,000원에서 28,000원 사이입니다. 술값과 별도로 1인당 받는 커버차지가 있는 곳도 있어서 처음 가는 바라면 두 가지를 같이 보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가게칵테일 한 잔커버차지
트라이싸이클시그니처 19,000~23,000원가게 안내에 없음
제스트모두 27,000원가게 안내에 없음
소코클래식 22,000~26,000원, 시그니처 28,000원1인 10,000원
빌라레코드 Bar클래식·분자·커스텀 25,000원새 공간 기준 확인 중
알로이 한남바 타임 시그니처 22,000원받지 않음

소코의 커버차지에는 그린 올리브, 아몬드, 초콜릿 기본 안주가 들어 있고 다 먹으면 다시 채워 주십니다. 빌라레코드는 이전 전 후기에는 커버차지가 없었지만 새 공간의 정책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가게 페이지에 적혀 있습니다.

같은 "상큼하게"에도 바마다 다른 잔이 나옵니다

같은 말로 주문해도 바마다 돌아오는 잔은 다릅니다. 제스트에서는 직접 만든 탄산과 농장에서 거둔 허브로 만든 잔이, 트라이싸이클에서는 연남동의 공기나 할머니 집 평상 같은 기억을 담은 잔이, 소코에서는 1920년대 응접실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서 클래식이 나옵니다. 바텐더가 손님의 몇 마디를 듣고 자기 바의 방식으로 답해 주기 때문에 첫 주문은 그 바가 어떤 곳인지 알아 가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처음 마시기 좋은 잔이 무엇인지, 논알콜 잔은 어떤 것이 있는지, 커버차지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가기 전에 각 가게 페이지에서 사장님 페르소나에게 물어보세요. 가게가 미리 적어 둔 메뉴와 안내로 답해 드립니다. 제스트와 소코 페이지에서 시작해 보셔도 좋고, 소개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추천으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