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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투바 초콜릿은 뭐가 다를까? 카카오 빈을 72시간 갈아 만드는 초콜릿

초콜릿 포장을 뒤집어 원재료명을 읽어 보신 적이 있나요? 고양 진밭마을의 느린커피가 만드는 초콜릿에는 싱글 오리진 카카오와 유기농 사탕수수 원당, 딱 두 가지만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초콜릿에는 카카오와 설탕 말고도 대두 레시틴 같은 유화제, 합성향료인 바닐린, 코코아버터 대신 쓰는 식물성 유지 같은 다양한 화학 첨가물이 들어갑니다. 카카오 빈부터 직접 만드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에는 이런 불필요한 화학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빈투바는 카카오 빈에서 바까지 한 곳에서 만든다는 뜻입니다

빈투바는 카카오 빈(bean)에서 초콜릿 바(bar)까지 만드는 사람이 모든 과정을 직접 맡는 방식입니다. 2005년 무렵부터 작은 초콜릿 메이커들이 카카오를 조금씩 사 와 직접 볶고 갈면서, 완성된 초콜릿을 녹여 봉봉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나 대량 생산 초콜릿과 자신들을 구분하려고 쓰기 시작한 말입니다. 법으로 정한 정의는 없어서, 이미 만들어진 카카오 매스가 아니라 카카오 빈에서 시작했다면 빈투바라고 부릅니다.

완성 초콜릿을 녹여 쓰는 쇼콜라티에의 일도 그 나름의 기술이고, 한 사람이 두 일을 다 하기도 합니다. 동탄의 초콜릿은언제나웃는다는 2010년 수제초콜릿 공방으로 문을 열었고, 지금은 카카오빈을 직접 볶아 맷돌로 오래 간 초콜릿으로 봉봉과 캐러멜 초콜릿을 만듭니다. 김포의 메이커스초콜릿은 이미 만들어진 초콜릿 매스를 녹여 쓰지 않는다는 점을 빈투바의 기준으로 소개합니다.

카카오 빈을 볶고, 껍질을 날리고, 사흘을 갑니다

카카오 빈은 산지에서 열매를 따 발효하고 말린 상태로 메이커에게 옵니다. 메이커는 카카오 빈을 골라 볶고, 깨뜨려 바람으로 껍질을 날리는 위노잉¹을 거친 뒤 남은 알맹이(닙스)를 설탕과 함께 돌 맷돌에 넣어 갑니다. 곱게 간 초콜릿은 콘칭²과 템퍼링³을 거쳐 틀에 들어갑니다.

¹ 위노잉(winnowing) 볶은 카카오 빈을 잘게 깨뜨린 뒤 바람으로 가벼운 껍질을 날려 보내고 무거운 알맹이(닙스)만 남기는 일입니다. 키질하듯 껍질을 골라내는 단계입니다.

² 콘칭(conching) 간 초콜릿을 오래 저으며 공기에 닿게 해 날카로운 신맛과 잡냄새를 날려 보내고, 입자를 코코아버터로 감싸 맛과 질감을 둥글게 다듬는 단계입니다.

³ 템퍼링(tempering) 녹인 초콜릿의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코코아버터를 고른 결정으로 굳히는 일입니다. 이 단계를 거쳐야 표면에 윤기가 돌고 똑 부러지며, 손에 쥐어도 쉽게 녹지 않습니다.

빈투바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여섯 단계를 한 장에 모은 그림입니다. 1 산지에서 발효·건조, 2 로스팅, 3 위노잉으로 껍질 날리기, 4 멜란저에 닙스와 설탕을 넣고 곱게 갈기, 5 콘칭으로 오래 섞기, 6 대리석 위에서 템퍼링한 뒤 틀에 굳혀 바로 만들기.

여러 가게가 가장 오래 시간을 들이는 단계도 '카카오 빈을 곱게 가는' 일입니다. 닙스의 절반 남짓은 코코아버터라서, 맷돌에서 갈리며 열을 받으면 단단한 알갱이가 걸쭉한 액체로 바뀝니다. 이때 액체 속 카카오 입자는 100마이크로미터 안팎이라 아직 혀에 모래처럼 걸립니다. 입자가 30마이크로미터를 넘으면 거칠게, 20마이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매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메이커는 입자가 그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갑니다. 덜 갈린 초콜릿은 카카오 빈이 아무리 좋아도 입안에서 까끌하게 남고, 이건 맛으로 메울 수 없습니다. 작은 메이커가 쓰는 돌 맷돌(멜란저)은 갈기와 콘칭을 한 통 안에서 함께 하기 때문에, 입자를 내리는 동안 날카로운 신맛도 함께 날아갑니다. 그래서 보통 24시간에서 72시간을 돌립니다.

대전 원도심의 가치있는초콜릿은 볶고 껍질을 날린 카카오 빈을 손으로 한 번 더 고른 뒤 72시간 넘게 갈고, 강원 고성의 보나테라는 말레이시아 사바에서 발효·건조한 카카오 빈을 고성의 바람에 한 번 더 말린 뒤 72시간 이상 맷돌에 갑니다. 망원동의 카카오다다는 카카오 빈이 바가 되기까지 128시간이 넘게 걸리는 과정을 "128 HOURS OF SCIENCE"라고 부릅니다.

카카오다다에서 볶은 카카오 빈을 두 손 가득 떠 올린 모습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가게도 있습니다. 남양주 덕소의 트리투바는 1층이 유리창 너머로 로스팅과 위노잉, 콘칭이 보이는 초콜릿 공장이고 위층이 카페입니다. 신월동 골목의 틴패낼리는 입구 쪽 유리 부스에서 커피 생두와 카카오빈을 함께 볶습니다.

틴패낼리 입구 옆 유리 부스 안에 검은 로스터 두 대와 작업대가 놓인 로스팅실 사진입니다.

빈투바 초콜릿의 N%는 카카오 빈의 함량입니다

빈투바 초콜릿에 적힌 70%, 85% 같은 숫자는 그 바에서 카카오 빈이 차지하는 함량을 뜻합니다. 카카오 빈을 통째로 갈았든 코코아버터를 더 넣었든 카카오 빈에서 온 재료를 모두 합친 무게 비율이라서, 70% 바라면 나머지 30%는 대부분 설탕입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덜 달고 더 쓰지만 이 숫자가 맛을 결정짓지 않아요.

같은 70%라도 카카오 빈이 자란 곳이 다르면 맛이 달라집니다. 메이커스초콜릿은 페루·코스타리카·탄자니아 카카오 빈으로 같은 70%를 만들어도 맛이 달라서 커피 원두처럼 골라 먹는 초콜릿이라고 설명합니다. 틴패낼리는 코스타리카·에콰도르·마다가스카르처럼 산지가 다른 미니 바 다섯 개를 담은 샘플러를 대표로 내놓고, 대구 화원의 엘씨로스팅랩은 에콰도르 팔로산토 농장과 페루 카하마르카 카카오로 밀크 50부터 다크 100까지 만듭니다. 느린커피는 쉐리와인 오크통에 숙성해 설탕 없이 단맛을 낸 탄자니아 100% 다크로 2023년 인터내셔널 초콜릿 어워드 월드파이널 은상을 받았습니다.

느린커피 카운터에 산지별 초콜릿 바 봉투가 줄지어 서 있고, 뒤쪽에 카카오 열매와 제조 과정을 그린 안내 카드가 놓인 사진입니다.

식품유형이 '준초콜릿'이면 코코아버터 대신 식물성 유지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포장 뒷면에서 하나 더 볼 것은 식품유형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공전은 초콜릿류를 초콜릿, 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준초콜릿, 초콜릿가공품으로 나눕니다. '초콜릿'으로 적으려면 코코아고형분이 30% 이상(코코아버터 18% 이상, 무지방 코코아고형분 12% 이상)이어야 하고, 밀크초콜릿은 코코아고형분 20% 이상에 유고형분 12% 이상이어야 합니다.

준초콜릿은 코코아고형분 7% 이상이면 되고, 코코아버터 대신 식물성 유지를 쓸 수 있습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와 EU가 코코아버터가 아닌 식물성 지방을 완제품의 5%까지만 허용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는 준초콜릿의 식물성 유지 상한이 없습니다. 식품유형과 원재료명 두 가지만 읽어도 손에 든 초콜릿이 카카오를 얼마나, 어떤 형태로 담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콜릿 가게 선반 앞에서 한 사람이 초콜릿 바를 뒤집어 포장 뒷면을 읽고 있는 일러스트입니다.

열네 곳의 빈투바 가게는 고집하는 지점이 서로 다릅니다

이따갈게 지도에는 지금 빈투바 초콜릿 가게 열네 곳이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에 네 곳씩, 강원에 세 곳, 대전·대구·창원에 한 곳씩입니다.

산지와 직접 거래하는 데 힘을 쏟는 가게가 있습니다. 2014년에 시작한 가치있는초콜릿은 산지를 찾아가 농부와 함께 품질을 확인하고 직거래로 카카오 빈을 들여옵니다. 보나테라는 2019년 외국 업체로는 처음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카카오 빈을 사고 가공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받았고, 트리투바는 에콰도르 팔로산토 농장과 직거래한 카카오 빈을 씁니다. 창원의 초코솔은 2006년부터 토론토에서 화산석 맷돌로 초콜릿을 만들어 온 브랜드가 2025년에 연 한국 첫 매장입니다.

한국 농산물을 초콜릿에 엮는 가게도 있습니다. 홍천의 샵봉초콜릿은 고향의 찰옥수수·사과·단호박·서리태를 에콰도르 카카오와 섞고 설탕 대신 대체당을 씁니다. 카카오다다는 한국의 햇밀과 토종쌀, 직접 기른 박하를, 초코솔은 제주 감귤칩과 국산 호박씨를 넣습니다.

커피나 빵과 함께 빈투바를 하는 가게도 많습니다. 서교동의 로스팅마스터즈 본점과 느린커피, 틴패낼리, 엘씨로스팅랩은 커피 생두와 카카오를 한곳에서 볶습니다. 연남동의 모닐이네하우스는 밀가루를 들이지 않는 글루텐프리 쌀 베이커리에서 빈투바를 만들어 애플시나몬 72%로 2026 International Chocolate Awards 아시아-태평양 은상을 받았습니다. 강릉 시내 골목의 테라로사 임당점에서는 테라로사가 강릉 구정면의 자체 공장에서 만들어 온 빈투바 초콜릿으로 낸 음료를 커피 대신 고를 수 있습니다.

시식이 되는지, 오늘 문을 여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빈투바 가게는 작업실을 겸하는 곳이 많아 가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카카오다다 매장은 목·금·토에만 열고, 메이커스초콜릿 쇼룸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엽니다. 샵봉초콜릿은 장터와 박람회로 매장을 비우는 날이 많아 전화를 먼저 달라고 안내하고, 엘씨로스팅랩은 함량별 바가 늘 다 있지는 않습니다. 시식도 가게마다 달라서 로스팅마스터즈 본점, 카카오다다, 초코솔은 모든 초콜릿을 맛보고 고를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찾는 함량이 오늘 있는지, 아이와 함께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지(트리투바, 초콜릿은언제나웃는다) 같은 것은 각 가게 페이지에서 사장님 페르소나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전화 없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빈투바 초콜릿' 칩을 누르면 열네 곳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 빈부터 직접 만드는 가게를 알고 계시다면 가게 추천으로 알려 주세요. 같은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